소설 등단작품 ( 당신의 하늘 ) 2000년 문학세계

3장

우설나라 2022. 9. 29. 07:15

당신의 하늘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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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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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을 가려던 마음이 없어졌다.

속고.. 속이고.. 만나고.. 헤어지고.. 또 만나고..

아직 몸살기운이 남아서인지 어깨가 떨려왔다, 다시 전기장판에 불을 키고 엎드렸다.

손가락을 데인손으로 뜨거운 찌개를 나르는 민석이 가여워 눈물이 났다..

저녁에 몸을 추스르고 슈퍼로 갔다

콩나물 1.50전 두부 2불 무 1.99전 파 4단에 1불.. 단돈 20불로 두 봉투가 양손에 들려졌다.

 

" 인희 아니니? 시장 보러 왔어?"

나는 깜짝 놀라 나를 뒤에서 치는 사람을 보았다

그리고는 더욱 당황하였다.

그것은 수경.. 주인 언니였기 때문이다

" 수경 언니.. 어떻게!"

" 어찌 왔냐고" 나도 우리 신랑하고 애들하고 맛있는 것 해주러 왔지!! 인희 신랑은 일갔겠구나?

우리 집에 갈까? 내가 깍두기 담근 것이 맛있게 익었어. 너네는 두식구 밖에 안되니 조금만 있어도 되잖아 응?"

나는 안절부절못하고 양손에든 봉투만 쳐다보았다..

" 얘! 어디 아프니?... 그러고 보니 얼굴이 휑하네... 어제 지숙이 없어서 너 몸살 났구나!

어제 너 혼자 15명 발을 닦았더라고...

내일은 지숙이 오니까 내일은 괜찮을 거야.."

"네...."

남의 속도 모르고 친절을 과용하는 주인 언니의 입담에 나는 쓰러질 것 같은 현기증을 느꼈다.

그리고는.. 끌려가듯 슈퍼 앞 아파트에 사는 그녀의 집에 가서 조그만 병에 빨간 깍두기를 담아 넣고

인사까지 하고 오고 말았다.

속으로 계속 중얼거리면서 어떡하지....어떻하지...내일은 어떻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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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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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숙이 말없이 그만둔 후 사흘 동안은 분위기가 험상하였다.

신문에 광고가 나가고 사흘 만에 중간기술자가 들어온 후 분위기는 다시 시끌시끌해졌는데

나의 입술은 더욱 무거워지고 어깨는 더욱 시렸다.

새로 들어온 그녀는 절대로 발을 안 닦았으며 기술도 없으면서 나를 부리기만 했다.

"인희야 이 아줌마 쏙좀 시켜라. 그리고 색깔 좀 잘 지우고..

손톱 좀 잘라서 담가.. 그래야 잘 떨어지지.. 몸은 약하게 안 생겼는데 왜 이리 비실거려!!

내가 전에 데리고 있던 애는 얼마나 파리파리 하고 사근거렸는데.. 얘는 웃는 것을 못 봐!..."

" 순애야! 제가 힘들어서 그런다.

초보자가 또 한 명 있었는데 글쎄 말없이 나가버려서 그래. 요새 재만큼 착한 애가 있는 줄 아니?"

" 언니! 요새 초보자들 쌔고쌧어요... 재는 라이선스도 없죠? 라이선스 있는 초보자들은 기본을 배우고 와서

가르칠 필요도 없고.."

나는 나가야지 싶었다

나를 싫어하는 사람하고 있을 필요도 없었으므로...

" 인희야 저기 애기 엄마 발해라 까다로운 년이니까 색깔 잘 칠해야 한다"

"네"

아이가 셋씩이나 되는 그 여자의 한 아이는 무릎에 앉히고 둘은 소파에 앉아서 계속 울었다.

소리소리 지르며 신경질 부리는 그 여자 때문에 나는 일을 제대로 할 수가 없었다.

" 조용히 못해?... 입 닥쳐!! 너희들 울지 마!! "

계속되는 소리들로 아이들은 이미 면역이 되어 무서워하지도 않고 고함소리에 맞춰 합창하며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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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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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을 닦아내고 마사지한 후 색깔을 칠하는데 이 여자의 화살이 나에게 쏟아졌다.

" 이게 뭐야? 너에게 안 하니까 기술자 오라고 해!!"

주인 언니가 쫓아오고 나는 앉았던 의자를 비켜주고 순애 언니가 색깔을 칠해주었다.

순애 언니는 일은 잘 못해도 영어가 되기에 손님들에게 비위를 잘 맞추어 일을 처리해나갔다

" 미안해.. 내가 이쁘게 칠해줄게.. 저 애가 일을 못해서 그래"

"우리 애들이 울고 난리라 빨리 가야 하는데 재가 너무 늦게 하니까 화가 나잖아

네가 빨리 이쁘게 칠해줘"

그녀는 의기양양해서 내 가칠 하던 발톱을 쓱쓱 지워나갔다

나는 눈물이 솟구쳤다.

화장실로 뛰어가 10분은 울었다.

수돗물을 틀어놓고.....

찬물을 얼굴에 뿌리며 세수하고 나오니 온 얼굴이 빨갛게 부어있었다.

눈. 코. 입. 귀까지.. 벌겋게 되었다.

나에게 대들던 흑인 여자는 울고 나온 나를 보더니 주인 언니에게 미안하다고 전해달라 하고는

세명의 아이들은 들쳐 매고 도망치듯 빠져나갔다.

나는 나의 자리에서 움직이고 싶지 않았다.

" 아이고 인희야 왜 울고 그래! 저년은 저런다고 수경 언니가 그랬잖아!! 울 일도 많다.

너는 이제 시작인데 울면 어떡하니 열심히 해서 기술자가 빨리되라 이 악물고.."

정자 언니가 안됐다는 듯 위로하였으나 순애 언니의 한심하다는 듯 쳐다보는 눈빛이 멍한 나의 머릿속을

오기로 만드는 게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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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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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일찍 가자고.. 우리 이쁜 인희도 울고.. 나도 기분이 착잡해서 안 되겠네..

1시간 일찍 나가서 짜장면이라도 사 먹고 가자.."

 

혼잡한 후러싱

한국사람들이 많이 모여있는 후러싱은 식당도.. 차도.. 상점도 많아서 영어 한마디 못해도 아쉬울 것 없는

동네.. 후러싱

나의 민석이 일하는 동네.. 우리의 지하셋방이 지탱하는 후러싱..

무궁화 꽃이 집집마다 울타리 너머 이상스럽게 많은 후러싱..

그날 먹은.. 울고 나서 먹은 짜장면은 참으로 오랜 시간이 흘러도 잊지 못하고 있다..

 

" 인희야 이제 오니?"

햇살 따가운 여름이면 나는 친구들과 관악산 아래 낙성대에 자주 갔다.

붉다 못해 검은빛이 햇빛을 받아 반사하는 모습은 너무도 아름다운 나이와 걸맞게 화려했다.

몸이 약한 나는 운동을 못해서 언제나 친구들이 신나게 즐기는 자전거를 바라보면서도 따라 즐거웠다.

" 인희야 너는 부잣집에 시집가서 손에 물도 묻히지 말고

소파에 앉아서 책이나 볼 팔자다!"

" 얘는 사람일은 모르는 거야 나중에 우리 집이 식당이라도 하면 어떡하니?

하루 종일 음식이라도 날라야지.."

" 너 아직도 민석 씨 만나니? 그 사람 너무 욕심이 많은 것 같지 않니? 집이 가난해서 보상심리 아냐?"

"오늘 민석 씨한테 우리 저녁 좀 사주 라그래!"

" 글쎄.. 민석 씨 시간이 어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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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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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기가 죽기 싫어서 민석을 불러냈다.

그는 늘 운동화에 청바지 그리고 티셔츠가 전부였다. 처음에는 심플하고 멋있었으나 가을이 되어도

잠바 하나 걸치지 않는 외관상 초라한 남자였다.

하지만 그의 눈빛.. 꿈을 향해 도전하는 그의 알 수 없는 힘에 나는 나의 모든 것을 그에게 포기했다..

너무 궁색하다며 친구들은 완강히 반대했다..

그 당시 나는 제법 잘 나가는 기대 유망주 아마추어 문학가였다.

도서관에 들어서면 햇빛 잘 비치는 나만의 자리에서 내가 경험하지 못한 모든 것을 체험할 때의 상상과

기쁨은 더할 수 없었다.

다 읽은 문학지를 덮고 나서 두 손에 들었을 때의 묘한 성취감.. 그 아름다운 가을 하늘과 눈발 날리는

종로서적 앞에서 발을 동동 구르며 기다리던 추억도,,

나는 나를 원했던 민석의 결정에 따랐다..

그러나.. 그 허무와 실망감은 나로 하여금 10년의 세월 뒤에도 한국에 갈 수 없게 만들었는데..

나를 사랑함보다.. 내가 더 사랑한 남자와의 생활은 더욱 회환으로 남는 것을..

세월이 흐른 후에야 알았다!!

 

공부를 하겠다고 들어온 민석..

여름이 지나 가을 그리고 겨울로 접어들었는데 엄두도 못 내고 있다.

아티스트가 되겠노라고 뉴욕 가서 아르바이트해서 돈을 모아 공부하겠노라고...

그러자면 내조자가 있는 것이 좋다고.. 문학 공부하는 나에게 뉴욕 가자고...

그의 눈빛은 빛났다.

언니 오빠들도 결혼 안 했는데 막내딸을 머나먼 뉴욕으로 보내기에는 부모님의 힘든 결심이 따랐다.

두 사람 모두 예술을 추구하니 자유분방한 하고자 하면 뭐든지 기회가 많은 뉴욕에 가겠노라고..

23세의 결혼은 희망과 호기심에 고생이야 중요하지 않았다.

조촐한 결혼식을 마치고 신혼 여행길로 들어선 뉴욕.

우리 둘이서 개척하겠니라던.. 뉴욕.. 그 뉴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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